608년 동로마의 Foca황제로부터 판테온을 기증받은 교황 성 보니파시우스 4세는 이듬해인 609년 3월 15일 이교도 신전이었던 판테온을 정화하고 성당으로 축성하여 “순교자들에게 봉헌된 성모 마리아 성당” (Santa Maria “ad Martyres”)으로 명명하여 오늘날까지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성당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보니파시우스 4세 교황은 로마시대 그리스도교 순교자들의 공동묘지였던 카타콤베를 발굴하여 무려 마차 28대 분량의 유골들을 판테온으로 이장하여 중앙제단 바닥 아래에 안치하고, 그들을 기념하는 성당으로 사용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당시 교황님 일행이 성전을 축성하기 위해 판테온으로 입장할 때 이곳에 있었던 이교 신들이 천장 쪽으로 도주하였고 그 과정에서 천장 중앙을 장식했던 청동 솔방울 조각과 부딪혀, 그 때 튕겨 나갔던 청동 솔방울이 근처 지역으로 날아가 떨어지게 되었는데, 그곳을 당시 로마인들이 솔방울 광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고, 현재까지 솔방울 광장(Piazza di Pigna)이라는 지명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 발굴된 청동 솔방울은 현재 바티칸 박물관 내부 솔방울의 정원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후 이 성당 축일인 3월 15일을 모든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축일로 지내기 시작하였고 8세기부터는 11월 1일로 옮겨 모든 성인들의 축일로 기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로써 판테온은 로마시대의 이교도 신전에서 그리스도교 성전으로 재사용하게 된 역사상 최초의 사례가 되었고, 이후 로마의 여러 건물들이 성당으로 개조되어 사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중앙제단과 가대
현재 판테온 내부 정면에는 중앙제대가 있는데, 성당으로 개조되기 전 이곳에는 신들의 우두머리였던 제우스 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현재의 제단은 18세기 교황 클레멘스 11세 때 알렉산드로 스페키(Alessandro Spechi)의 작품이며 제단 뒤편의 나무로 된 가대(Coro)는 성 바오로 대성당 복원에 참여하기도 했던 루이지 뽈레띠(Luigi Poletti)가 1840년에 제작한 작품입니다..
벽면 중앙에는 비잔틴 양식의 이콘인 성모자(Madonna Odighitria: “그리스도만이 생명의 길”임을 소개하는 성모)의 목판이 있는데 , 당시 로마인들은 성 루가의 작품이라고 믿었던 이콘입니다. 현재 걸려있는 이콘은 20세기 복사품입니다.
이 이콘은 당시 성당 축성 기념으로 포카 황제가 교황 보니파시오 4세에게 기증하여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이콘입니다.
앱스 부분의 금과 청금석으로 장식된 모자이크는 18세기 교황 클레멘스 11세 때에 제작된 모자이크입니다.
앞쪽에 새로 제작된 청동 제단과 독서대는 이탈리아 현대작가인 페데리코 세베리노(Federico Severino)가 2010년에 기증한 작품으로 판테온이 성당으로 축성된 지 140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한 작품입니다.
제단을 중심으로 좌우 양쪽 벽에는 성 라시오(S.Rasio, 왼쪽)와 성 아니스타시오(Sant'Anastasio, 오른쪽)의 석상이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교황 보니파시우스4세 때에 두 성인의 유골을 성당 지하에 안치하였는데, 18세기 성당 복원 공사 중 제단 오른쪽 바닥 아래에서 두 성인의 유골이 발굴되었습니다.
성지(聖地)의 성 요셉 경당 혹은 거장들(예술가들)의 경당
(Cappella di S.Giuseppe di Terrasanta o Cappella dei Virtuosi del Pantheon.
성당 입구를 지나 왼쪽 첫 번째 경당으로 이 경당은 쿠폴라(Cupola)를 받치고 있는 원형과 사각형의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안쪽의 직사각형 형태의 빈 공간은 로마시대 신들의 석상을 모셨던 전형적인 형태를 볼 수 있습니다.
현재는 그 자리에 어린 예수님과 요셉 성인의 석상이 있습니다.
이 경당의 이름에 성지(聖地)라는 말이 사용된 이유는 1542년 당시 경당을 복원했던 성당 참사 위원인 세니의 데시데리오(Desiderio da Segni)라는 주교님이 이스라엘 예수님 성지를 순례하면서, 그곳에서 가져온 흙 한 상자를 이곳 바닥에 묻으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또한 예술가(거장)들의 경당이라는 이름은 당시 판테온을 관리하기 위한 예술가 협회를 구성하고 이 경당을 그들의 경당으로 기념하게 허락함으로써 당시 예술가들을 지칭하는 "거장들의 경당" 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 협회를 거쳐간 멤버들의 이름을 일부 거명하면 라파엘로 산치오, 카라바죠, 비뇰라, 디에고 벨라스케스, 프란치스코 보로미니, 음악가인 아르칸젤로 코렐리, 안토니오 다 상갈로, 안토니오 카노바 등등. 당대를 대표하던 최고의 예술가들
입니다.
라파엘로(1483 우르비노 – 1520 로마)의 묘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더불어 르네상스의 3대 거장 중 한 명인 라파엘로는 1520년 4월 6일 당시 성 금요일이며 자신의 37번째 생일날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온 로마 시민과 당시 교황 레오 10세가 그의 죽음을 애도했으며, 생전에 그가 묻히기를 소원했던 이 곳에서 장례미사 후 안치되었습니다.
사실 판테온은 이미 14세기 중반부터 명사들의 묘지로 활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곳에는 화가 안니발레 카라치(Annibale Carracci), 건축가 발다싸레 페루찌(Baldassarre Peruzzi), 음악가 아르칸젤로 코렐리(Arcangelo Corelli) 등의 유해가 묻혀있는 곳입니다.
1833년 묘지를 발굴하여 그의 유해를 다시 확인하였고,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이 기증한 로마시대의 대리석 관에 이장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무덤 옆 묘지를 설명하는 도판에는 라파엘로의 절친이며 시인이자 인문주의자였던 피에트로 벰보(Pietro Bembo) 추기경이 쓴 라파엘로의 추모시가 라틴어로 적혀 있습니다.
"ILLE HIC EST RAPHAEL TIMUIT QUO SOSPITE VINCI / RERUM MAGNA PARENS ET MORIENTE MORI"
("Qui giace Raffaello dal quale, lui vivente, la Natura temette di essere vinta e, lui morendo, di morire anch'essa").
“여기 라파엘로가 누워 있다. 그가 살아 있었을 때, 자연은 그가 자연을 능가할까 두려워했고, 그가 죽었을 때, 자연도 함께 죽었노라.”
현재 그의 기념비와 묘지는 1811년 안토니오 무노(Antonio Munoz)의 작품이며 좌측 벽면에 놓인 라파엘로의 청동흉상은 1833년 쥬셉페 파브리스(Giuseppe Fabris)의 작품입니다.
성령강림 대축일
해마다 성령강림 대축일이 되면 오전 10시 30분 미사 후 소방관들이 천장의 Oculus를 통하여 내부로 붉은색 장미꽃잎을 뿌리는 행사가 펼쳐집니다.
1편과 2편에 나누어 판테온에 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