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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역사이야기

베드로 성당에서 보는 교회사와 여성 3 (성녀 헬레나)

by 이탈리아TV 2020. 10. 29.

 

고고학자들의 수호성인

 

Andrea Bolgi (일명 Carrarino) - 성 베드로 대성당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의 기록에 따르면, 성녀 헬레나는 여관 주인의 딸이었습니다. 평민 신분의 딸이었던 그녀는

270년경 후에 황제가 되게 될 로마의 장군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Constantius Chlorus)를 만나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혼하였고  280년경 외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바로 313년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여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Flavius Valerius Aurelius Constantinus)입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그러나 292년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는 황제가 되려는 정치적 야망으로 헬레나 성녀와 이혼하고, 서방 정제인 막시미아누스(Marcus Aurelius Valerius Maximianus Herculius) 황제의 딸인 테오도라(Theodora)와 결혼하였습니다.

 

헬레나 성녀는 남편으로부터 버림받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으나 306년 효심이 깊었던 아들인 콘스탄티누스가 황제가 되면서 그녀를 Augusta(존귀한 여인)로 호칭하게 하고 황후의 신분으로 로마로 모시고 와서 머물게 하였습니다.

 

로마시대에 발행된 헬레나 성녀의 기념금화, 황후를 상징하는 Augusta 라는 글귀를 볼 수 있다.

 

황후가 된 성녀는 그러나 권력과 부귀보다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자선과 신앙생활에 전념하였습니다.

 

교회사가인 성 에우세비우스(Eusebio)에 의하면 아들의 권유로 그리스도 교인이 된 그녀는 326년경 78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성지를 순례하면서 성지를 복원하여 베들레헴에 예수님 탄생 성당, 예루살렘 올리브 산의  주님 승천 성당과 예수님 부활 성당(현재는 무덤 성당)을 짓게 하였습니다.

 

베들레헴에 있는 에수님 탄생성당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님 무덤성당

특히 그리스도의 십자가 유물들을 발굴하여 로마로 가져와 그녀의 궁전에 보관하였고, 그녀의 궁전터에 세워진 예루살렘의 성 십자가 성당에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습니다.

 

로마 예루살렘의 성 십자가 성당에는 헬레나 성녀가 발굴한 그리스도의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다.

 

 

주님 부활 성당(현재는 무덤 성당)을 지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처형한 십자가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무수히 많은 십자가가 발굴되자 성녀 헬레나는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찾기 위해 한 젊은이의 시체를 모든 십자가 위에 올려놓게 했는데, 그 중 한 십자가 위에 올려놓았을 때 그 젊은이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죽은 사람을 살린 십자가가 주님의 십자가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참된 십자가를 발견한 성녀 헬레나는 이를 셋으로 나누어, 하나는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 있는 아들 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 보내고, 또 하나는 예루살렘의 주교인 성 마카리우스(Macarius)에게 주고, 남은 부분은 로마로 가져왔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성녀 헬레나의 상징은 십자가이며, 이콘이나 성 미술에서 십자가를 들고 있는 성인으로 묘사됩니다. 

 

프레스코화 - 헬레나 성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발굴하는 장면

 

로마에서도 최초의 성당인 라테란의 성 요한 대성당을 비롯하여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유해를 발굴하게 하고 기념성당을 짓게 하여 성지와 유물을 보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교회는 그녀를 고고학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추대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