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구시가에 있는 여러 고대 로마 유적 중에 오늘날까지 그 원형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현재까지 사용 중인 유일한 건축물이 판테온입니다.
르네상스 거장 미켈란젤로는 사람의 손이 아닌 “천사의 작품” 이라고 칭송하였고, 판테온을 가장 위대한 고대 건물로 여겼던 천재화가 라파엘로는 그의 소원대로 1520년 판테온에 묻혔습니다.
프랑스의 문호 스탕달은 "고대로마의 가장 아름다운 유산"이라고 극찬하였습니다.
판테온는 그리스어 ‘판 테이온(Πάν θειον)’에서 유래한 말로,
우리말로 의역하면 "만신전" 즉 “모든 신들을 위한 신전”이라는 뜻입니다.
로마인들이 숭배하던 군신 "마르스"의 이름을 붙인 "마르스의 광장(Campus Marzius)"이라고 불리던 장소에 기원전 27년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의 친구이자 사위, 그리고 후계자였던 아그리파(Marco Vipsanio Agrippa)에 의해 처음 건축되었습니다.
이곳은 당시 도성 바깥에 위치한 장소였으며 로마 군인들의 훈련장으로 이용되던 곳인데, 또한 로마의 전승에 의하면 이곳에서 로마의 건국시조인 로물루스가 하늘로 승천했다고 전하는 장소입니다.
아그리파의 판테온 건물은 현재의 원형의 모습이 아닌 입구 쪽이 더 긴 직사각형 형태의 건물이었습니다.
두 차례 화재 후 서기 118~125년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건축가: 다마스쿠스의 아폴로도로스 Apollodoro di Damasco로 추정) 마지막으로 재건축하였는데 기존과 다른 현재와 같은 원형의 모습으로 설계하였고 입구도 180도 반대방향으로 전환되었습니다.
현재 판테온 입구 정면 삼각형 부분인 팀파눔 아래쪽에는 다음과 같은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M·AGRIPPA·L·F·COS·TERTIVM·FECIT. "(Marcus Agrippa, Lucii filius, consul tertium fecit)
“루시우스의 아들인 마르쿠스 아그리파가 세 번째 집정관 부임 때에 건축했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명문은 판테온을 복원한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에 기록한 명문입니다.
로마의 역대 황제들 중 건축사에서 중요한 건축물들을 건축하여 일명 건축가 황제로도 알려진 아드리아누스 황제는 그러나 정작 자신이 만든 건축물에(트라이아노 신전 제외)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 않았던 황제로 알려져 있습니다.
판테온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608년 동로마의포카(Foca) 황제가 당시 교황인 성 보니파시우스 4세에게 기증하였고, 이듬해에 교황 성 보니파시우스 4세는 이교도 신전이었던 이 건물을 정화하고 성당으로 축성하여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성모 마리아 성당” (Santa Maria “ad Martyres”)이라고 명명하였으며 오늘날까지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로써 판테온은 고대 로마의 이교도 신전에서 그리스도교 성전으로 재사용하게 된 역사상 최초의 사례가 되었습니다.
또한 이것이 바로 오늘날까지 판테온 건물이 그 원형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655년에는 로마를 점령한 동로마의 코스탄테 2세가 판테온 외부 지붕의 황금색 청동을 약탈하였고, 733년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3세는 그 자리에 현재의 납으로 덮어 지붕을 보호하게 합니다.
중세 때부터 입구 앞 광장이 시장터로 사용되고 건물 주변에 여러 개의 건물들이 덧붙여지기 시작하였으며, 1627년 우르바노 8세 교황은 정면 입구(Pronao)지붕 양쪽에 당대 최고의 예술가인 쟌 로렌조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에게 주문하여 2개의 종 탑을 세우게 합니다. 그러나 종탑을 본 당시 로마 시민들이 일명 “당나귀 귀”라고년 두 개의 종탑은 해체되게 됩니다.
또한 입구 회랑 내부 천장의 청동을 해체하여 성 천사의 성에 배치할 대포 80문을 제작하게 하고, 나머지는 성 베드로 대성당 중앙제단의 발다키노를 제작하는 데 사용하게 하였습니다.(실제로는 베드로 대성당 발다키노의 청동은 베니스에서 가져왔습니다)
이 사건으로 당시 로마 시민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진 유명한 풍자로 교황을 비난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습니다. "Quod non fecerunt barberi fecerunt Barberini"
"바르바리(야만족)들도 하지 않았던 만행을 바르베리니(교황 우르바노 8세의 가문 이름)들이 저질렀다."
이 말은 당시 우르바노 8세 교황 가문의 이름인 바르베리니(Barberini) 가문의 이름을 야만인(Barbari)에 빗대어 한 말입니다.
1853년 교황 비오 9세는중세 때부터 판테온 주변에 붙여서 지었던 건물들을 허물고 정리하여 오늘날의 모습으로 주변을 정리하였고 1873년에 내부 대리석 바닥을 새로 복원하였습니다.
1870년 이탈리아가 통일된 이후 이탈리아 왕국의 초대 3명의 왕들의 묘지도 판테온 안에 조성되었데요.
초대 왕 빅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Vittorio Emmanuele II), 제2대 왕 움베르토 1세(Umberto I), 그리고 그의 부인인 마르게리타(Regina Margherita di Savoia) 여왕의 무덤입니다.
마르게리타 여왕은 우리가 잘 아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피자인 "마르게리타 피자"의 이름의 기원이 된 여왕이기도 합니다.
이제 판테온의 건축적인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판테온 건물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스와 로마 신전의 중요한 차이점 한 가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데요.
그리스인들이 우선적으로 생각했던 신전의 개념은 신을 위한 공간이며 신전 내부는 오직 사제들만이 출입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볼 수 없는 내부보다는 보이는 외부공간을 미학적으로 더 아름답게 표현하려고 애를
썼다면 로마인들에게 내부 공간은 대중들이 신전 안으로 들어가 신과 관계하던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내부를 활용하기 위한 실용성을 우선시했다는 것입니다.
아래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과 비교한 사진을 보시면 그 점을 쉽게 알 수 있는데요.
미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로마 판테온 정면(Pronao)의 삼각형(팀파눔) 부분이 너무 커서 상대적으로 팀파눔을 받치고 있는 돌기둥들이 왜소하게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건물의 진정한 묘미는 건물 본랑에 해당하는 원형의 형태인 뒷부분과 내부에 있습니다.
외부
수직으로 올라가는 외부(드럼)의 높이는 약 30m. 두께 약 6m이고 그 위에 접시를 뒤집어 놓은 듯한 반구가 올려진 형태입니다.
원통의 외부는 벽돌로 되어 있고 각 층마다 아취(Archi) 형태로 형성된 부분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이는 상부의 하중을 효율적으로 분산시키기 위해 아취를 활용한 모습입니다.
입구 회랑은 회색과 핑크색으로 된 총 16개의 화강암 기둥들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자세히 보시면 이 기둥은 맨 왼쪽에 있는 3개의 기둥을 제외하고 모두 접합한 것이 아닌 하나의 통돌(Monolitico) 임을 알수가 있습니다.
기둥 각각의 높이는 약 14m, 지름 약 1.5m, 무게60톤인데요, 놀랍게도 당시 이집트에서 직접 가져온 돌들입니다.
좌측의 접합한 흔적을 볼 수 있는 3개의 기둥은 17세기 때 새로 복원한 기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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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로 들어가는 유일한 입구에는 지금도 옛 청동문이 있는데요. 16세기 중반 비오 4세 교황 때 부분적으로 복원되었으나, 현재까지 보존된 로마시대 때에 제작된 3개의 청동문 중 하나이며 가장 규모가 큰 청동문입니다. (나머지 로마시대 때 제작된 청동문은 라테란의 성 요한 대성당 중앙문, 포로 로마노에 있는 로물루스 신전 입구 문이다.)
내부
내부로 들어서면 외부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공간감에 압도당하며 저절로 경탄의 소리를 금할 수가 없는데요, 지금도 대부분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내부 공간 전체적으로는 커다란 하나의 구의 형태이며, 좌우 길이와 높이가 정확히 일치합니다.(지름 43.3m)
하부(드럼 부분)와 상부 지붕(꾸뽈라, Cupola)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부 드럼 부분은 2층 구조로 현재 중앙 제대와 반대편 입구를 제외한 6개의 에세드라(반원공간)와 8개의 에디꼴라(직사각형 공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상부 지붕(Cupola)은 5층 구조로 각 층마다 안쪽으로 들어간 28개의 액자 모양 격자 형태로 시멘트 공법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28이라는 숫자는 1부터 7까지의 각 숫자를 더한 숫자입니다.(1+2+3+4+5+6+7=28)
이는 신들 중 가장 중요한 올림포스의 일곱 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천정 중앙에는 지름 9m 길이의 열려있는 원형의 공간이 있는데요. 로마인들은 사람의 눈을 의미하는 오쿨루스(Oculus) 라고 불렀습니다.
바로 이 공간이 입구와 함께 빛이 들어오는 유일한 광원이었습니다.
이 건물의 가장 놀라운 점은 현재까지 철골 없이 건축된 원형의 돔 구조 건축물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큰 건물이라는 사실입니다.(부르넬레스키가 설계한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돔, 미케란젤로가 설계한 로마 베드로 대성당의 돔보다 더 크다)
하부에서부터 상부로 올라가면서 점점 벽면의 두께가 줄어드는 공법을 사용하였고 이는 전체적으로 천장의 하중을 줄이기 위한 의도입니다.
지상에서 수직으로 올라가는 드럼부분의 두께는 약 6m이고, 굽어지기 시작하는 천장(Cupola) 부분부터는 점점 두께를 줄여 Oculus의 가장자리 두께가 약 2m가 안되며 Oculus는 지름 9m의 구멍으로 뚫어서 상부로 올라갈스록 무게를 줄여 나갔습니다. 또한 천장의 안쪽으로 들어간 격자 문양의 140개 장식도 하중을 줄이기 위한 공법의 일환이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하부에서부터 천장으로 올라가면서 각기 다른 석재를 사용하였습니다. 아래는 무겁고 강한 성질의 석재를 사용하고 천장으로 올라 갈수록 더 가벼운 석재를 활용하였습니다.
맨 아래쪽은 석회화(Travertino)와 벽돌, 중긴층은 응회암(Tufo)과 벽돌, 콘크리트(모르타르), 다음은 벽돌과 콘크리트, 그리고 마지막으로 맨 윗부분(Oculus 주변부)은 가벼운 화산석의 비율을 높여 무게를 줄였습니다.
오쿨루스(Oculus)
천장에 있는 오쿨루스(Oculus)는 지름만 약 9m로 빛이 들어오는 유일한 광원으로써의 기능뿐만이 아니라 제물을 태울 때 연기가 빠져나가게 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주의 중심인 태양을 상징하였고 종교적 의미로도 하늘과 빛은 신의 영역을 상징한다고 믿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계절에 따라 건물 내부 빛이 도달하는 지점을 계산하여 달력의 기능까지 하였습니다.
이는 당시 농업을 하는 농민들에게 시를 뿌리고 수확을 거두는 시점을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예, 춘분과 추분,/ 하지6월 21일 12시 빛이 입구 문에 도달.)
전승에 의하면 “지붕(Cupola)을 건설할 당시 흙을 채워 그위에 서서 공사를 진행했고, 흙 속에 금화를 섞어 놓음으로써 공사가 끝난 후 많은 로마 시민들이 금화를 얻기 위해 흙을 빠르게 빼냈다”라는 일화가 있으나 사실은 목재를 이용하여 Cupola 형태의 작업대를 만들어 공사를 진행하였습니다.
당시의 기술 수준으로 철골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석재로만 이렇게 거대한 돔을 건설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던 후대인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오해라고 합니다.
덧붙여 제가 개인적으로 체험한 사실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리면 구조적으로 완벽한 구의 형태로 인하여 환상적인 음향도 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입니다.(현재도 음악회 장소로 활용)
뚫려있는 천정의 구멍으로 비가 들어오지 않는다?
판테온과 관련하여 널리 회자되는 또 다른 오해 중 하나가 바로 판테온 내부에는 비가 들어오지 않는다 라는 주장입니다.
이는 아마도 과거 전기시설이 없었던 시절 내부를 밝히기 위해 많은 양의 촛불과 횃불을 사용하면서 내부가 높은 온도가 형성되어 뜨거워진 공기를 외부로 밀어내는 일명 “굴뚝효과”로 인하여 비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는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바닥에는 건축 당시에 만들어진 22개의 배수구 구멍을 볼 수 있으며, 현재도 비가 오는 날 내부에 비가 들어오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바닥은 1873년도에 복원한 것이나 복원에도 불구하고, 바닥 디자인은 원형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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