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는 셀 수 없다고 할 만큼 많은 성당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로마의 7 언덕 중 첼리오(celio) 언덕이라 불리는 지역에 가톨릭 세계에서 특별한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가장 오래된 4대 성당 가운데 하나인 라테란의 성 요한 대성당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라테란의 성 요한 대성당이라고 부르는 이 성당의 공식 명칭은 “지극히 거룩하신 구세주와 세례요한 그리고 사도요한 기념 대성당”입니다.
특별히 가톨릭 교회에서는 이 성당을 로마와 온 세상 모든 교회의 어머니이며 수장(mater et caput )이라는 특별한 지위를 부여한 성당입니다.
이 지역은 로마 시대 때 라테란이라는 이름을 가진 귀족 가문의 소유지였으며 현재 대성당이 지어진 자리에 그들의 궁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로마시대 역사가인 타키투스(Publius/Gaius Cornelius Tacitus, 서기 55년 출생 ~ 117 혹은 120 사망)는 그의 저서인 연대기에서 서기 65년 이 지역의 소유주이며 집정관이었던 프라우치우스 라테라누스(Plautius Lateranus)라는 인물이 네로 황제에게 반기를 드는 반란사건에 가담하였다가 발각이 되어 처형되었고, 그가 소유했던 모든 재산과 토지는 황제에게 귀속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서기 201년경에는 셉티미우스 세베리우스 황제가 equites singulars 라는 황제 친위부대를 창설하여 이곳에 주둔시킴으로써 군사시설이 들어서게 되었고, 남은 토지는 그의 충신이며 절친이었던 티투스 세스티우스 라테라누스(Titus Sextius Magius Lateranus)라는 인물에게 선물로 하사하였습니다.
"프라치우스 라테란"과 "티투스 세스티우스 라테란"이 동일한 가문의 사람들 이었는지에 대해서 밝혀진 바는 없으나, 공교롭게도 이 두사람이 시대는 다르지만 같은 "라테란"이라는 성(姓)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중세때부터 오늘날까지 이 지역의 이름이 라테란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이후에 이 지역을 소유한 파우스타(Faustae)라는 이름의 또 다른 가문이 등장하는데, 역사가들는 4세기에 등장하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두 번째 부인인 파우스타(Fausta Maxima Flavia)의 가문인 것으로 여깁니다.
파우스타는 4분 통치 시절의 황제였던 마시미아누스(M. Aurelius Valerius Maximianus) 황제의 딸이며,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정적이었던 막센티우스 황제의 여동생이었는데,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혼인을 통하여 황후가 되었습니다.
파우스타 가문이 이 지역을 소유하게 된 정확한 경위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곳에 파우스타 궁전(Domus Faustae)이 있었다는 기록을 통하여 이곳이 그들의 소유지였음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에 의하여 시작된 4두체제가 그의 은퇴 후 분열되면서 6명의 황제가 난립해 로마는 분열의 위기에 직면하였습니다. 이때 죽은 아버지의 후임으로 황제가 된 콘스탄티누스는 내전을 종식시키고 황제가 되는 과정에서 그의 정적인 막센티우스와 밀비오 다리에서 운명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날밤 꾸었던 그의 꿈속에 하늘에서 빛나는 십자가가 나타나더니 '이 표시로 너는 승리할 것이다(In hoc signo vinces)라는 글자가 나타난 모습을 보았고, 꿈에서 깨어난 콘스탄티누스는 병사들에게 명령하여 꿈에서 본 이 십자가 문장을 앞세워 밀비오 다리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여 내전을 종식시키고 유일한 황제로 등극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하여 그리스도교를 공인하고 이 장소에 새 궁전을 지어 당시 교황 성 멜키아데(Melchiades)에게 기증하여 거주하게 함으로써 역사상 최초의 교황청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궁전 건물과 함께 성당을 건축하여 318년(혹은 324년) 교황 실베스테르 1세가 “지극히 거룩하신 구세주 성당”으로 명명하여 축성함으로써 교회 역사상 최초의 공식적인 성당이 탄생하였습니다.
9세기에 교황 세르지오 3세는 "세례 요한"을 기념할 수 있게 하였고, 12세기에는 교황 루치오 2세가 "사도 요한"도 함께 기념하는 성당으로 명명하였습니다.
13세기 말 교황 보니파시우스 8세는 교회 역사상 최초의 성년을 이곳에서 선포하였는데, 1300년 첫 성년을 준비하기 위하여 대대적인 성당 보수공사를 하였습니다.
특히 새로운 강복의 발코니를 건축하면서 피렌체 출신의 이탈리아 최고 화가인 치마부에와 죠토를 불러 벽화작업을 하게 하였습니다.
이후 14세기 초(1309년)에 프랑스 아비뇽으로 교황청이 옮겨 가기 전까지 교황청의 소재지로서 가톨릭 교회의 중심이었습니다.
1378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1세는 아비뇽 유수를 종식시키고 다시 로마로 돌아왔으나, 오랜 시간 방치되어 황폐화된 이 곳은 더 이상 예전 교황청으로써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후의 교황님들은 오늘날의 교황청이 소재하고 있는 바티칸 지역에 상주하기 시작하면서 이곳이 아닌 바티칸 지역에 새로운 교황청이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5세기 초 교황 마르티노 5세부터 시작된 복원은 오늘날까지 여러 교황들에 의하여 20세기에 이르러 완성되었고, 2000년도에는 새 천년을 맞이하는 대희년을 준비하면서 성문을 새로 교체하였습니다.
1929년 바티칸을 정식 국가로 승인한 라테란 조약이 체결된 장소이며, 이 후 성좌의 자산으로
치외법권의 지위를 누리는 곳입니다.
현재까지 로마 교구의 주교좌 성당이며, 전 세계 가톨릭 성당들의 어머니이며, 수장의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12세기부터 11월 9일을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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