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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성당이야기

리파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

by 이탈리아TV 2020. 10. 15.

로마의 트라스테베레 지역에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광장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기념하여 세워진 리파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이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이며 아씨시에서 복음적 가난을 실천하며 제2의 그리스도로 존경을 받았던 프란치스코 성인이 1209년 교황님을 만나기 위하여 로마로 오셨을 때 머무셨던 장소를 기념하는 성당이며 현재도 작은 형제회라는 프란치스코 남자 수도회가 있는 곳입니다.

 

성 프란치스코 아 리파 성당

성당 내부에는 아주 특별한 공간이 있는데, 내부 2층에 당시 성인이 머무셨던 방이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습니다.

 

성당 이름에서 리파(Ripa) 라는 뜻은 과거 이 성당건물 뒤편 테베레 강가에 있었던 부두시설을 뜻하는데요,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시 근처에 물자와 사람들이 왕래하던 큰 부두시설이 있었던 데서 이름이 유래합니다.

 

1876년 리파 그란데 부두

이곳에 최초의 성당은 11세기에 지어졌고 베네딕도 수도회와 수도회에서 운영하던 성 비아지오라는 이름의 병원시설이 있었습니다. 특히 나병환자들을 돌보던 시설이었는데, 프란치스코 성인은 1209년 교황님의 알현을 기다리며 로마의 후원자였던 "세떼솔리의 야고바 부인"의 주선으로 이곳에서 머물며 환자들을 돌보는 봉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성인이 돌아가신 후 1229년 그레고리오 9세 교황은 프란치스코 성인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곳에 프란치스코 수도원을 초대하여 로마에서 최초의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탄생하였고, 현재까지 작은 형제회라는 프란치스코 남자 수도회가 상주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성당건물은 1603년부터 오노리오 롱기(Onorioo Longhi)의 설계로 1701 마티아 데 로씨(Mattia de Rossi)가 재건축한 성당입니다.

 

성당 내부는 작고 아담한 3랑식 구조로 된 바로크 양식의 성당이며, 좌우로 4개씩의 작은 소경당들이 있습니다.

중앙제단은 1746년에 로마 출신의 세콘도 (Fra Secondo da Roma)라는 이름의 수도사의 작품이며, 가운 데에 프란치스코 성인의 석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성당내부

 

여러 개의 경당 중 베르니니의 조각 작품이 있는 알베르토니 경당 (Cappella Palluzzi Albertoni)이 특히 유명합니다.

교황 클레멘스 10세의 조카였던 팔루쪼 알베르토니(Palluzzi Albertoni) 추기경이 자신의 가문을 위한 경당을 주문하였는데, 가문의 일원이며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이면서 1671년 복자가 되신 루도비카 알베르토니(Ludovica Albertoni,1474~1533)의 유해가 보관된 경당입니다.

이 경당이 바로크 시기 최고의 예술가였던 쟌 로렌죠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1598~1680)의 마지막 조각 작품으로 알려진 루도비카 알베르토니의 황홀경(Estasi della Beata Ludovica, 1675년)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알베르토니 경당, 쟌 로렌조 베르니니가 조각한 "루도비카 알베르토니의 황홀경"

 

그러나 무엇보다 이 성당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성당 2층에 프란치스코 성인의 방이 보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이 장소는 성당 지기가 열쇠를 보관하고 있어 성당지기에게 부탁하면 방문이 가능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방은 성당 내부 제의방을 통하여 2층으로 연결된 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성당지기에게 부탁하면 성인의 방으로 올라갈 수 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생전에 여러 번에 걸쳐서 로마를 방문하셨고, 그때 이 방에서 머무셨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로마에 오셨을때 머무셨던 방, 현재는 경당으로 개조되어 있다.

 

현재 이곳은 작은 경당으로 개조되어 있으며, 왼쪽에는 당시 성인이 성 비아지오 병원과 통하던 출입문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중앙 제대가 있는 자리가 성인이 주무셨던 침대가 있었던 공간이며 오른쪽 벽면 철망 안에는 성인이 베개로 사용하셨던 돌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 사용하셨던 돌베개

 

이 돌베개에 관하여 전해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평소 단식과 고통을 즐겨하셨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건강을 염려했던 야고바 부인이 성인이 주무실 때만큼이라도 편하게 해 드리고 싶었던 바람으로 직접 푹신한 양털이 들어간 베개를 만들어 드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프란치스코 성인은 푹신한 베개로 인하여 오히려 잠을 설쳤고, 그리하여 다음날 야고바 부인에게 돌려주며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삶은 편안하고 안락한 삶이 아닌 것 같다고 말씀하시고는 다시 평소에 사용하시던 돌베개를 사용하셨다고 합니다. 

 

경당 한쪽에 놓여있는 사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방문하셔서 기도하시는 사진

 

경당을 나와서 다시 계단을 내려오면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품을 비롯한 여러 성물들이 보관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 보관된 성물들 중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나무의 일부, 프란치스코 성인이 입고 계셨던 옷의 일부분, 그리고 오상을 받으셨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오상의 혈흔을 적셔놓은 천조각이 유명합니다.

 

오상의 혈흔을 적셔 보관한 천

마지막으로 이 성당에는 초현실주의 화파에게 큰 영향을 준 이탈리아 형이상학파 화가였던 죠르죠 데키리코(Giorgio de Chirico, 1888~1978)가 묻혀있는 성당이기도 합니다. 

 

아래 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youtu.be/O42blJd173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