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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성당이야기

성 밖의 성 바오로 대성당 1 - 로마에서 잠들다(역사와 입구정원)

by 이탈리아TV 2021. 1. 28.

역사

 

67년 로마에서 순교하신 후 그가 묻혀있는 묘지를 기념하기 위하여 지어진 이 성당은 로마의 4대 성당 가운데 유일하게 로마시를 에워싼 아우렐리안 성벽(270~275년 건설) 외곽에 지어져 "성 밖의 성 바오로 대성당"이라고 부릅니다.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하여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최초의 성당인 라테란의 성 요한 대성당을 기증한 직후, 로마에서 순교를 당하신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의 무덤을 발굴하여 그 자리에 각각 두 성인을 기념하는 성당을 건축하였습니다.

 

로마시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오스티엔세 길(Via Ostiese)에 세워진 이 성당은 고대 로마시대의 경계인 아우렐리안 성벽에서 외곽으로 약 2km지점에 위치하며 사도 성 바오로의 무덤을 기념하기 위하여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건축하여 324년도에 교황 실베스트르 1세(재위 314-335)가 축성하였습니다.

 

성당이 세워지기 전 이 장소에는 서기 1~3세기까지 로마인들의 묘지 지역이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67년 이곳에서 약 3km 떨어진 오늘날 바오로 사도의 참수터 성당이 있는 세 개의 샘(Tre Fontane”)이라는 곳에서 참수형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시 이곳에 묘지를 소유하고 있었던 그리스도 교인이었던 루치나(Lucina)라는 여인이 성인을 위하여 자신들의 묏자리를 제공함으로써 이곳에 성인의 유해를 안치하게 되었습니다.

 

바오로 성인이 카타콤베가 아닌 로마인들의 묘지에 묻힐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로마 시민권을 소유한 인물이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건축했던 성당은 지금보다 훨씬 작은 규모였으나, 380년 테살로니카 칙령을 통하여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선언한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현재와 비슷한 규모의 성당으로 재건축하였고,이때 성당 입구의 방향이 현재와 같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바뀌었습니다.

 

8세기초에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2(재위 715-731)가 베네딕도 수도회를 초대하여 성당의 관리를 맡기면서 1300년이 지난 현재까지 베네딕도 수도회가 머무르고 있습니다.

 

9세기말 교황 요한 8세(재위 872-882)는 사라센인들의 침입으로부터 이 성당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당과 수도원을 둘러싸는 성벽을 쌓았고, 당시 그 규모가 마치 작은 도시와 같다고 해서 요한폴리스(Giovannipoli)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요한폴리(Giovannipoli 출처-바티칸 박물관)

 

11세기에는 이곳 베네딕도 수도원 원장 출신이며 카노사의 굴욕”사건의 주인공인 교황 그리고리오 7세(재위 1073-1085)가 종탑을 건축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823년 7월 15일 밤 지붕보수 작업을 하던 인부의 실수로 화재가 발생하여 성당의 회중석 공간이 거의 파손되어 1500년 동안 유지되어왔던 성당이 큰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1823년 화재로 파괴 된 성당의 모습

 

1823년 화재로 파괴 된 성당에서 회수한 석재들

 

이에 교황 레오 12세(재위 1823-1829)는 전 세계 신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성당을 다시 재건하기 시작하여 1854 12 10일 교황 비오 9세(재위 1846-1878)에 의하여 새 성당 축성되었습니다.

 

현재 이 성당과 수도원은 라테란 조약에 의하여 성당과 수도원 전체가 이탈리아가 아닌 바티칸령으로서의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 밖의 성 베드로 대성당 수도회 명판, 아래에는 이 장소가 이탈리아가 아닌 "바티칸령"임을 알리는 명패

 

또한 1980년도에는 유네스코에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입구 정원

 

성당 입구에는 정화를 상징하는 정원이 있습니다.

성당 건축에 있어 초세기부터 오랜 기간 동안 성당 입구에는 정원을 만드는 것이 전통이었습니다.

성당을 하느님의 집으로 여기고 거룩한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기 전 정원을 통과하게 함으로써 깨끗한 영혼만이 하느님의 집에 들어갈 수 있음을 상기시키기 위한 의미입니다.

 과거 로마의 4대 성당에는 모두 입구에 이러한 정원이 있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모두 사라졌고, 현재는 이 성당만이

예전 정원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성당입니다. 

 

 

정원은 가로, 세로(70m × 70m) 길이가 동일한 회랑이 있으며 150개의 기둥(건축가: Poletti, Calderini)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돌기둥들은 이탈리아 북부지방의 마죠레 호수(Lago Maggiore)에서 채석하여, 바지선으로 Po강까지 수송다시 아드리아 해로 이동하여 이탈리아를 한 바퀴 돌아 로마의 Tevere 강을 통하여 성당 앞까지 운반하였는데, 수송 기간만 총 4년의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정원 중앙에는 카라라 산 대리석(작가 Giuseppe Obici)으로 만든 칼을 들고 있는 성 바오로의 석상이 있습니다.

: 하느님의 무기(에페소 6 11~12),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6 17)

칼에 의해 참수를 당한 바오로 사도의 순교 상징

 

두루마리: 교리

 

1823년 화재 후 복원된 성당 정면의 새 모자이크

 정면 모자이크

 

하부: 예언자(이사야, 예레미아, 에제키엘, 다니엘)

중앙: 하느님이 어린양(그리스도), 4개의 물줄기(생명의 말씀인4 복음)

거룩한 도시(예루살렘, 베들레헴)에서 나오는 12마리 양(12 사도)

종려나무: 순교를 상징

 상부: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 사이에 계신 그리스도

 

중앙문 (1931 년 , Antonio Mariani):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의 생애

 

 

성문 (Porta Santa: 2000 년 , Enrico Manfrini)

희년(성년)에만 열리는 성문(Porta Santa)

 

 

바오로의 문(2009년, 작가 Ver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