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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역사이야기

로마 프란치스코 재속회의 주보이신 복녀 루도비카 알베르토니

by 이탈리아TV 2020. 10. 16.

 

로마의 트라스테베레 구역에 있는 로마 최초의 프란치스코 수도원인 리파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 안에는 로마 관구 프란치스코 재속회의 주보이신 복자 루도비카 알베르토니(Ludovica Albertoni, 1474~1533)를 기념하는 경당이 있다.

 

알베르토니 경당(리파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

 

루도비카 성녀는 1473년 로마 명문가의 아버지 스테파노 알베르토니(Stefano Albertoni)와 어머니 루크레치아 테발디(Lucrezia Tebaldi)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두 살 때 부모님을 잃고 고아가 되어 고모에게 맡겨져 양육되었다.

 

그녀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체테라의 야고보(Giacomo della Cetera)라는 귀족과 결혼하여 3 명의 자녀를 낳았다.

그녀의 남편은 폭력적이며 불안정안 성격의 소유자였으나 그녀는 희생과 신앙으로 결혼생활을 유지하였다.

 

서른두 살에 남편의 죽음으로 미망인이 되었고, 집안의 가장이 되어 모든 유산의 상속자가 되었으나, 재산을 자녀들에게 공정하게 분배하여 물려주고 그녀는 프란치스코 재속회에 입회하여 여생을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며 살았다.

 

그녀는 리파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 있었던 작은 형제회로부터 영적 지도를 받으며 특별히 "가난의 성모"를 자신의 영적 모델로 여겼다. 그리하여 스스로 귀족으로서의 모든 사회적 권위를 거부하고 낮은 자세로 자신의 모든 것을 가난한 이들과 어려움에 처한 소녀들을 돕는데 헌신하였다.

 

특히 1527년에 일어난 루터파 용병들로 구성된 카를 5세 황제 군대의 로마 약탈 사건으로 인하여 비참한 상황에 처한 로마 시민들을 도와  당시 시민들로부터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존경을 받았다.

 

그녀는 1533 1 31일 로마에서 선종하였고, 그녀의 유해는 리파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 내에 안나 경당에 모셔져 있다.

클레멘스 10세 교황은 1671그녀를  복자품에 올리셨다.

 

로마 관구 재속 프란치스코회의 주보성인이다.

 

youtu.be/O42blJd173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