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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동네의 중고품 시장의 클라스 안녕하세요. 안나에요. 심심해서 오늘은 잠시 간간히 가는 동네에 중고를 파는 시장에 나왔어요. 몇년 전에는 모가 있겠나 싶어서 차로만 지나다녔는데, 하루는 그냥 들어가봤다가 깜짝 놀랬어요. 역시 모든지 오래된 나라는 제가 생각했던 중고 시장하고는 다르더라구요. 그리고 나서 간간히 시간나면 가서 이리저리 구경한답니다. 몰 파는지 한번 구경해보실래요? **그릇은 정말 많아요. 참 곱게도 섰지.. ****의자가 16유로.... ㅋㅋ. 이런 오래된 중고품부터, 각종 옷, 신발, 난로.. 없는게 없더라구요. 날이 추우니깐 위에 있는 오래된 난로는 집에 가져왔으면 싶더라구요. 프란다스 개에 나올법한 옛날 나무 오븐이에요. 예전 타자기들과 계산기들... 요즘은 에트로 시대라 이런것들이 인기도 있을것 같네요. 오늘도 .. 2020. 11. 23.
잔 로렌초 베르니니 - 성 베드로 대성당 잔 로렌조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1598 나폴리 – 1680 로마) 1598년 나폴리에서 태어난 베르니니는 피렌체 출신의 예술가인 아버지 피에트로 베르니니(Pietro Bernini)를 따라 어린 시절 로마로 오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신동이라는 칭송을 받으며 아버지와 함께 작업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던 그는 곧 17세기를 대표하는 바로크 최고 예술가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바오로 5세 교황은 어린 그의 재능을 보고 장차 제2의 미켈란젤로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고, 그레고리우스 15세 교황은 그에게 기사의 작위를 수여하였습니다. 또한 우르바노 8세 교황은 “내 임기 동안에 그가 살아있는 것이 나에게는 큰 행운이다”라고 극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를 1629년 성 베드로 대성당의.. 2020. 11. 22.
소도시여행 - 산니꼴라의 톨렌티노 Tolentino 이탈리아는 각 지역마다 그 동네를 지키는 수호 성인들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수호성인의 축일에는 동네도 각자 휴일을 가지고 축제를 하는데요. 올해는 코로나로 모두 취소가 되었네요.. 자주 이탈리아의 마르케라고 하는 주의 도시를 갔었는데, 언제나 다시 갈 수 있을런지, 먼거리도 아닌데 마음은 한국만큼 멀게 느껴지네요. 오늘 소개하는 도시는 톨렌티노라고 하는데요, 특별히 이탈리아에서는 San Nicola의 Tolentino라고 합니다. 산니콜라 성인의 톨렌티노지요. 13세기 말의 성인으로 신비주의가 였는데 특별히 이탈리아 사람들이 이 성인을 위령성월인 11월인 지금 영혼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갈수 있는 전구 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 성인의 톨렌티노 대성당의 모습 (공사중인 성당) - 성당내부.. 2020. 11. 17.
몬테카시노 성 베네딕도 수도원(Abbazia di Montecassino) 몬테카시노(Montecassino)는 우리말로 카시노 산이라는 뜻입니다. 로마에서 남쪽으로 약 120km 떨어진 해발 519m의 산 꼭대기에 세워진 수도원입니다. 480년경 이탈리아 중부 누르시아에서 태어난 베네딕도 성인은 수비아꼬를 떠나 529년경 이곳에 정착하여 베네딕도회의 모체가 되고 서양 수도회의 모델이 되는 수도회를 설립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중용과 공동생활을 중시하는 수도 규칙서를 저술하여 서방 수도회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547년 선종하실 때까지 이곳에서 사셨고 선종 후에는 그의 쌍둥이 여동생인 스콜라스티카 성녀와 함께 묻혀계십니다. 역사 속에서 이 수도원은 네 번의 큰 시련을 겪었습니다. 첫 번째는 577년 롱고바르도족의 침입으로, 두 번째는 883년 사라센인들의 침입으로 파괴.. 2020. 11. 17.
돈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와 소변세) 오늘날 이탈리아 사람들은 시민들을 위한 공용 화장실을 공중 화장실(Bagno Pubblico)이라 부르지만 1980년대까지는 베스파시아노(Vespasiano)라고도 불렀는데, 이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그렇게 불렀습니다. 베스파시아노(Tito Flavio Vespasiano, 서기 17년~79년)는 네로 황제의 후임으로 서기 69년~79년까지 재임했던 황제이며, 로마의 상징이기도 한 유명한 콜로세움 건축을 시작한 황제이기도 합니다. 왜 로마시대 유명한 황제의 이름이 공중 화장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을까요? 다른 모든 지배자들처럼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도 항상 돈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로마의 세금은 높은 수준이었고 여기에 또 세금을 올려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2020. 11. 8.
카라칼라 욕장(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있기를 기도하라) 만약 우리가 로마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로마인에게 집에서 샤워는 어떻게 하는지를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을 했을까요? 로마시대에는 현대처럼 일반인들의 가정에까지 물을 공급하는 시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일반인들은 일과 후에 공중 목욕장을 들러 몸을 깨끗이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이미 로마 시절부터 로마의 7대 불가사의로 불렸던 카라칼라 욕장의 공식 이름은 안토니니아나 욕장(Thermae Antoninianae)이었습니다. 로마의 공공 목욕장 가운데 306년에 디오클레치아누스 욕장이 지어지기 이전까지 가장 규모가 큰 욕장이었으며, 오늘날까지 그 형태가 그대로 보존된 유일한 욕장으로 고고학과 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로마시대 유산입니다. 역사 이 욕장은 카라칼라 황제에 의하여 21.. 2020. 11. 7.
판테온 2 (이교 신전에서 그리스도교 신전으로) 608년 동로마의 Foca황제로부터 판테온을 기증받은 교황 성 보니파시우스 4세는 이듬해인 609년 3월 15일 이교도 신전이었던 판테온을 정화하고 성당으로 축성하여 “순교자들에게 봉헌된 성모 마리아 성당” (Santa Maria “ad Martyres”)으로 명명하여 오늘날까지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성당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보니파시우스 4세 교황은 로마시대 그리스도교 순교자들의 공동묘지였던 카타콤베를 발굴하여 무려 마차 28대 분량의 유골들을 판테온으로 이장하여 중앙제단 바닥 아래에 안치하고, 그들을 기념하는 성당으로 사용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당시 교황님 일행이 성전을 축성하기 위해 판테온으로 입장할 때 이곳에 있었던 이교 신들이 천장 쪽으로 도주하였고 그 과정에서 천.. 2020. 11. 3.
판테온 1(가장 위대한 로마의 건축물) 로마 구시가에 있는 여러 고대 로마 유적 중에 오늘날까지 그 원형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현재까지 사용 중인 유일한 건축물이 판테온입니다. 르네상스 거장 미켈란젤로는 사람의 손이 아닌 “천사의 작품” 이라고 칭송하였고, 판테온을 가장 위대한 고대 건물로 여겼던 천재화가 라파엘로는 그의 소원대로 1520년 판테온에 묻혔습니다. 프랑스의 문호 스탕달은 "고대로마의 가장 아름다운 유산"이라고 극찬하였습니다. 판테온는 그리스어 ‘판 테이온(Πάν θειον)’에서 유래한 말로, 우리말로 의역하면 "만신전" 즉 “모든 신들을 위한 신전”이라는 뜻입니다. 로마인들이 숭배하던 군신 "마르스"의 이름을 붙인 "마르스의 광장(Campus Marzius)"이라고 불리던 장소에 기원전 27년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 2020. 11. 2.
베드로 성당에서 보는 교회사와 여성 3 (성녀 헬레나) 고고학자들의 수호성인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의 기록에 따르면, 성녀 헬레나는 여관 주인의 딸이었습니다. 평민 신분의 딸이었던 그녀는 270년경 후에 황제가 되게 될 로마의 장군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Constantius Chlorus)를 만나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혼하였고 280년경 외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바로 313년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여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Flavius Valerius Aurelius Constantinus)입니다. 그러나 292년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는 황제가 되려는 정치적 야망으로 헬레나 성녀와 이혼하고, 서방 정제인 막시미아누스(Marcus Aurelius Valerius Maximianus Herculius) 황제의 딸인 테오도라(.. 2020. 10. 29.